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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서남쪽 기슭에서는 귀선이라는 소년이 손발을 쓰지 못하는 아버지와 앞 못보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다. 귀선이는 병석에 계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병을 떼여주려고 인삼캐러 떠났다. 산속으로 들어간 귀선이는 뜻밖에도 한 삼신소녀를 만나서 숱한 인삼을 캐가지고 돌아왔다. 귀선이는 제집에서 쓸 인삼을 남겨놓고 나머지는 이웃의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귀선이가 인삼을 많이 캤다는 소문이 한입 두입 건너 도적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도적들은 노자지가 생겼다고 야단이었다.
" 그깟 집이야 털기 어렵잖지."
" 잔말 말고 오늘저녁엔 한번 휙 손을 써봅세."
" 옳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단 말이요."
밤중에 도적들은 무리를 지어 귀선이네 집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귀선이를 묶어놓고 협박하였다.
"네가 인삼을 많이 캤다지. 당장 내놓아라."
도적놈들은 귀선의 목에 시퍼런 칼을 들이대고 으르대었다.
어떻게 캐온 인삼이며 어떻게 쓰자던 인삼이라고 망나니들이 배를 불린단 말인가.
"한뿌리도 없어요."
"흥, 없다고. 그냥 뺀다면 네 애비에미까지 천당으로 보내겠다."
도적놈들의 흉흉한 기세를 본 귀선의 부모들은 도적들에게 무릎을 꿇고 손이야 발이야 비는 수밖에 없었다.
"걔만 살려주시우, 우리가 인삼을 내여놓겠수다."
귀선의 어머니는 손더듬으로 궤짝을 찾아서 궤문을 열고 인삼을 내어놓으며
"인삼은 캐왔으나 동네 불쌍한 노인들을 구제하다나니 이것밖에 없어유. 제발 우리 귀선이만 다치지 말아주시우."하고 눈물을 흘렸다. 우두머리인 듯한 놈이 귀선이를 밟고 있다가 귀선의 어머니가 내녀놓은 인삼을 채어가고는 큰소리로 웨쳤다.
" 집을 뒤져!"
영이 떨어지자 도적들은 귀선이네 집을 발칵 뒤집어 엎었다. 인삼이 더 나오지 않으니 그자들은 귀선이를 실컷 차고 치다가 돌아갔다. 귀선이는 너무 얻어맞아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웠다.
이튿날, 이웃의 어른이 마실을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개자식들! 호적들!"
동네사람들도 귀선이네를 위안하려고 찾아왔다. 인삼을 가진 이웃들은 돌려주면서
" 귀선이 이것이라도 되받게. 참 이런 변이 일어날줄 알았더면 우리 늙은 것들이 주책머리없이 왜 이 인삼을 받았겠나. 이 인삼이 집에 그냥 있었더면 귀선이가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게 아닌가!"
"어르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굽빠진 항아리에 물을 못채우듯이 아무리 인삼이 많단들 도적들의 욕심이야 끝이 있겠습니까. 근심마십시오. 내 몸이 나으면 다시 인삼을 캘 수도 있을겁니다."
귀선이는 굳이 사양하며 한사코 인삼을 받지 않았다.
밤이 되었지만 귀선이는 사지가 쑤셔서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한밤중까지 뒤척거리던 귀선이는 겨우 풋잠이 들었다. 방문이 삐죽이 열리며 짙은 향기가 풍겨왔다. 백두산에서 인삼캘 때 도와주던 소녀가 빵긋 웃으며 사뿐사뿐 걸어들어왔다."
귀선아, 넌 정말 마음이 착하구나. 난 너의 고통스러운 심정도 알만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너무 상심하지 말아. 내일 아침 해돋이때 선인교 벼랑 위의 소나무곁으로 찾아와, 응."
말을 마친 소녀는 생글 웃고 나갔다. 귀선이는 소녀를 가지 말라고 부르다가 깨여나니 꿈이었다. 그런데 쑤시던 아픔도 사라지고 천근처럼 무겁던 몸도 날 듯이 홀가분해졌다.
날이 푸름푸름해서 눈을 뜬 귀선이는 삼신소녀가 가리켜준 곳으로 뛰어갔다. 그가 선인교벼랑 위의 소나무밑에 이르니 동산에서 태양이 얼굴을 빠금히 내밀고 있었다. 그는 소나무에 기대여앉아서 소녀를 기다리였다. 소나무아래엔 바위틈이 있고 바위틈에는 빨간 달을 쓴 인삼이 있었다. 삼을 캐도 종자삼만은 캐지 말라고 알려주던 소녀의 말이 생각나서 캘 마음은 있으나 주저하였다. 귀선이는 소녀가 날 오라고 했으니깐 여기에 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 소녀여, 내가 왔어요. 그대는 어디에 계셔요?"하고 소리쳐 불렀다. 그랬더니 생글생글 웃는 소녀가 삼꽃 속에서 살짝 걸어나왔다.
" 왜 서만 있어요. 이 삼을 캐세요."
"그러다가 종자삼이면 어쩌겠어요." 귀선이는 더수기를 긁었다.
" 호호호... 언제부터 이렇게 점잖아졌어요. 어서 캐가세요. 캐서 이끼로 싸고 봇나무 껍질로 감아서 집으로 가져가세요. 집에 가선 붉은 실로 인삼허리를 묶어서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곳에 잘 건사해야 해요. 꼭 기억해주세요. 네." 소녀는 말을 남기고 소리없이 사라졌다.
귀선이는 소녀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지니고 임삼을 캤다. 보통인삼이 아니었다. 굵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빛도 발산하는 아름다운 인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귀선이는 부모들한테 인삼 한뿌리를 캐온 이야기를 하였다. 부모들도 희한한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였다. 어머니는 낡은 농짝을 들춰서 붉은 실을 내놓으며 말하였다.
" 얘야, 이 실은 내가 너의 아버지와 백년가약을 맺을 때 쓰던 붉은 실인데 이걸 쓰면 좋겠다."
귀선이는 어머니가 주는 붉은 실을 받아서 인삼의 허리를 조심조심 동이었다. 그리고는 이끼와 봇나무껍질로 싸서 어머니 농짝에 넣어두었다.
이튿날 일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온 귀선이는 아연해지였다. 가마목은 깨끗이 거두어져있었고 가마는 윤기가 반드르르 돌고 집안에 향기가 차넘쳤다.
"아버지, 어머니 이게 웬 일입니까?" 이상야릇한 생각이 든 귀선이는 이렇게 물엇다.
아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하였다. 글쎄 웃방에서 네 아버지를 거들어주다가 저녁때가 된 것 같아서 가마 가시러 나왔더니 참 이상한 일도 있엇단다. 이 눈먼 소경이 저녁을 지으려고 서두르는데 가마목에서 인기척이 나지 않겠니. 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틀림없는 여인이더구나. 그 여인은 나를 가만히 앉아잇으라면서 제가 저녁을 짓겠다지 않겠니. 내가 "자네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차차 알 게 될거라더구나. 나는 어리둥절한 김에 어쩔줄을 몰랐지. 그 녀인은 저녁을 지어놓고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단다. 어머니는 상금도 그 여인을 놓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귀선이는 또 아버지와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방안에 누워있다보니 애석하게도 그 여인을 보지도 못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귀선이는 그 신비한 일로 하여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도대체 누가 왔다 갔을까? 한밤중이 되어 귀선이가 잠을 청하느라 두눈을 감았을 때 향굿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그가 살그머니 눈을 떠보니 삼신소녀가 문밖의 달을 지켜보며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귀선이는 깜짝 놀라서 일어나 앉으며 삼신소녀의 손목을 잡고 입을 열었다.
"그대는 누구시길래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면서 나를 도와주는가요?"
소녀는 천연스럽게 여쭈었다.
"소녀는 백두산 인삼신의 딸이예요. 우리 부모들은 그대의 착하신 마음에 감복하여 그대를 도와주며 백두산 인삼을 가꾸어서 가난하고 어진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였어요."
귀선이는 삼신소녀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는 또 꿈을 꾸는 것만 같아서 한마디 떠보았다."
삼신소녀여, 이게 꿈인가요? 생신가요? 만일 꿈이 아니라면 죄송스럽지만 나에게 찬물 한사발을 떠다주어요."
귀선의 말이 끝나자 소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일어나서 물 한사발을 떠왔다. 귀선이는 그 물을 받아서 꿀꺽꿀꺽 들이마시였다. 과연 꿈이 아닌 진실이었다. 귀선이는 아무리 들어오는 복이라도 그대로 받기는 아름이 차서 또 말을 하였다.
"삼신소녀여, 그대 베푼 은혜만 해도 태산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가난한 집에 있겠어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또 불구자예요. 다시다시 생각해보고 마음을 결정해요."
저고리고름을 만지던 삼신소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대의 마음은 알고도 남음이 있사와요. 가난한 사람은 하늘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법은 없사와요. 공연한 자비심을 버리고 내 가슴에 두벌 감긴 이 붉은 실을 한벌 풀어서 그대의 가슴에 감으세요. 그러면 소녀는 영원히 이 집에 있을거예요."
이 뜻밖의 말에 귀선이는 부끄러워서 어찌할바를 몰랐다. 삼신소녀를 놓치기는 아쉬워도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는 어정쩡해하였다.
"상 대가 안되는가요?" 삼신소녀가 쳐다보며 물었다.
" 아, 아니."
귀선이는 떨 리는 손으로 소녀의 저고리고름을 풀고 그의 가슴에 붉을 실을 한벌 풀어내여 자기의 가슴에 감고 소녀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부로 된 귀선이와 삼신소녀는 그날부터 부모님의 병구환에 달라붙었다. 귀선이네 부모는 천만뜻밖에도 어여쁜 삼신소녀를 며느리로 맞고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애들은 아직 좀 어린 것 같지만 일처리는 어른들에 못지 않았던 것이다.
귀선의 아내는 날마다 샘물터에 나가서 샘물을 길어다가 자기가 가지고 온 약을 풀어서 어머니 눈을 닦아주었다. 귀선이는 아내가 시켜주는대로 산에 가서 약초를 캐다가 아버지에게 달여서 대접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더니 석달만에 어머니는 앞을 보게 되었고 아버지는 절로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부모들의 병이 낫게 되자 귀선이네 부부간은 한쌍의 비둘기마냥 산을 오르내리며 인삼씨를 채집하여 백두산 천봉만악에다 뿌렸다. 하여 그때로부터 백두산의 골안마다에는 진귀한 인삼이 자라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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