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드룩과 지누단다 사이의 계곡에는 많은 철다리가 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다리이며, 트레커들을 베이스캠프로 안내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뉴브릿지 위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네팔 현지 지도를 보면 지누단다 마을 근처에 새로 생긴 287미터의 매우 긴 다리는 ‘Bridge’라고 표기하고 있는 반면에, 히말파니(Himalpani) 부근의 다리에 ‘New Bridge’라고 표기하고 있다.
트레킹 중에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다리에는 ‘Donated By Kadoorie, Agricul Tural Aid Association British Gurkhas Nepal’이라는 기념석이 있다. 영국농업원조협회의 카두리라는 사람이 기부했다는 뜻이다. 아니 카두리라는 단체이름일지도 모른다. 카두리바이오뱅크일지도. 단체든 사람이든 안나푸르나 전역에 이런 철다리를 놓아주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예전에 안나푸르나 지역에 홍수가 나서 계곡물이 불어나면 마을 주민과 트레커들이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부를 통해 철다리가 놓여졌다. 철다리는 튼튼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이고 무엇보다 비용이 덜 든다.
뉴브릿지를 향해 출발했다. 아침부터 설산에 눈보라가 요동치고 있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베이스캠프까진 별 탈 없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란드룩에서 조그 떨어진 곳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장작더미가 쌓여 있는 문라이트 게스트하우스 부근에서 네팔 아이를 만났다.
어느 민족계열의 아이일까. 네팔에서 오래 살다보면 어느 민족인지 서로 잘 알아본다고 한다.
이른 아침이라 세수도 못한 듯했다. 하지만 우리 시골 아이들처럼 순박하고 예뻤다. 아이는 무척 수줍어했다. 오른 손 팔목에 팔찌를 차고 있는데 네팔 사람들은 팔찌를 차면 행복과 건강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시간 쯤 걸었는데 설산의 눈보라는 여전했다. 새들도 넘어가지 못하고 돌아가는 안나푸르나, 여기서 보면 자그마한 눈보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눈폭풍이라고 한다. 우리는 트레킹 내내 설산의 눈보라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ABC에 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 지 무척 궁금했다. 이런저런 상상이 머리 속에서 그려졌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이 떠올랐다. 히말라야 깊은 산맥 속에 숨겨진 도시, 샹그릴라에서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평생 젊음을 유지하면서 사는 공동체다. 이 책이 나오기 전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인 조셉 록이 히밀라야를 다녀온 후 쓴 여행기가 있었다. 제임스 힐튼은 이 여행기를 보고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아무튼 히말라야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도 여전히.
촘롱과 간드룩 이정표가 나왔다. 가이드 라마 씨가 사진 찍느라 뒤처지고 있는 우리 일행을 기다리던 중 동네 히말라야견이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달려들었다. 동네마다 이런 히말라야견이 많았다. 이 개는 지누단다까지 꽤 먼 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라왔다. 트레커들에게 길 안내도 한다.
일간지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2018년 11월 네팔 ‘카레’ 마을의 떠돌이 히말라야견이 ‘서밋클럽’이라는 원정대와 함께 7,129미터의 바룬체 등정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 히말라야견 이름은 ‘메라’였다. 메라는 등정 중에 빙하나 크레바스 지역에서 원정대를 안내하기도 했고, 급경사가 많은 바룬체에서는 원정대 보다 먼저 올라가 기다렸다고 한다. 아무튼 트레킹 내내 만났던 많은 히말라야견들은 대부분 튼튼하고 영리해 보였다.
트레킹을 하다보면 이런 수도관 같은 것을 자주 만난다. 가이드 라마 씨에게 물었더니 수력발전소라고 했다. 강에서 물을 끌어올린 다음 그 낙차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고 했다. 대규모 댐을 만들어 전력을 만들어 낼 법도 하지만 네팔인들은 작은 수력발전소로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풍요로운 자연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다리를 만났다. 그리고 두 번째 다리를 만났다. 높지도 길지도 않았다. 좁은 계곡이지만 큰 비가 오면 이렇게 좁은 계곡은 오히려 물쌀이 빨라 더 위험하다. 뉴브릿지를 만나려면 더 가야한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강이다. 깨끗한 물, 물쌀이 무척 빠르다. 2월이기 때문에 엄청 차가울 것 같았다.
란드룩을 뒤로 하고 두 번째 마을 롯지 입구에서 꽤 웅장한 폭포를 만났다. 100터 쯤 되는 것 같았다. 원시림 속에서 쏟아지는 폭포 같은 느낌이었다. 산이 깊으니 물이 많은 곳이다.
폭포를 지나 두 번째 만난 작은 롯지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란드룩에서부터 따라온 히말라야견이 롯지에서 살고 있는 다른 히말라야견과 놀고 있다. 아마도 친한 사이인 듯 서로 반갑게 엉킨다. 우리 포터들이 히말라견들의 노는 모습을 보면서 한가롭게 쉬고 있다.
롯지 건물은 대부분 벽돌로 짓는데, 여기 롯지는 돌을 다듬어 만들었다.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좋았다.
다시 길을 나섰다. 꽤 긴 철다리를 만났다. 네팔 현지 지도로 볼 때 이게 뉴브릿지인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넌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온 롯지와 폭포가 한눈에 보였다.
뉴브릿지를 지나 롯지를 또 만났다. 벌집통 같은 초록색 야외등이 특이했다.
길을 다가다 노새 행렬을 만났다. 우린 길을 터주기 위해 길 옆 언덕으로 올라갔다. 우리를 따라오던 히말라야견도 언덕에 올라 노새를 빤히 바라보았다.
안나푸르나 주민들에겐 노새 행렬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고마운 수단이지만 우리에겐 신기한 풍경이 된다. 트레킹 내내 이런 노새 행렬을 자주 만났다. 노새들은 주로 가스통, 곡식, 야채, 생필품 등을 롯지나 가게에 전달해 준다.
드디어 지누단다로 가는 길에 287미터의 매우 긴 철다리를 만났다. 다리 초입에는 소박한 노점상이 있다. 길이도 길이지만 바닥을 보니 강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현기증이 일었다. 블랙표지판에 노란 글씨로 ‘Please stop and wait while Mules are walking over the Bridge’라고 쓰여 있다. 노새가 다리를 걷는 동안에는 멈추고 기다리라는 뜻이다.
꽤 긴 시간 아찔한 현기증을 삼키면서 다리를 건너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유쾌한 웃음이 가득한 트레커 일행을 만났다. 일반 트레거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어떤 목적을 위해 ABC에 다녀온 듯했다. 남성들 가방을 보니 내셔널지오그래픽.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들과 함께 동행한 거였다. 그들은 긴 다리를 건너기 전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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