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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미래] 미디어의 개인화

by TNN 2021. 3. 30.

라디오나 텔레비전과 같은 기기들이 학교, 은행, 음식점, 기차역 같은 공공장소에서 함께 보는 미디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때가 있었다. 그 기기들이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가정에 보급되었지만 여럿이 함께 보는 미디어라는 특성은 버리지 못했다.

어릴 적 내게 과자봉지나 지나간 신문에 박힌 글자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라디오였다. 서울 변두리에서 살았지만 저녁엔 촛불을 켜고 살았다. 그래도 라디오만큼은 건전지가 남아 있는 한 온 식구가 귀를 기울이며 드라마나 뉴스 같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단단히 했다. 아침에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늘 하루도 유쾌하게!” 같은 오프닝 테마가 흘러나오는 <아차부인 재치부인>을 들으면서 눈을 떴고, 어둠이 시나브로 깔려가는 초저녁엔 <마루치 아라치>를 즐겨 듣곤 했다. 물론 텔레비전이 막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동네 구멍가게에서 돈을 내고 보던 시절이었다. 70년대엔 금성전자에서 나온 19인치 흑백 텔레비전이 집 안에 들어오면서 영상매체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80년대엔 턴테이블과 소니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겨 듣게 되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경우 과거엔 온 식구들과 함께 보는 미디어였지만, 턴테이블과 워크맨은 혼자 즐기는 미디어가 된 셈이다. 그리고 지금은 텔레비전조차 혼자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컴퓨터가 거실에 모여 있던 개인들을 책상 앞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손 안의 자그마한 단말기로도 음악, 영화, TV 등 거의 모든 미디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당간당한 건전지에 의존해 온 가족이 라디오를 들었던 시절에서 손 안에 모든 미디어를 포괄해버린 지금까지 불과 40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우리의 기억에는 IBM,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삼성전자, 네이버, 다음커뮤니케이션, HP, 구글, 애플, 노키아,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기업들의 명단이 각인되어 왔다. 그리고 그 기억의 중심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워크맨과MP3,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 전화와 모바일, 검색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같은 하드웨어 단말기나 미디어 서비스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게 명성을 안겨 준 테크놀로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코 길지 않은 역사에서 시작되었다. 180여 년 전에 발명된 사진, 150여 년 전에 발명된 축음기, 1백여년 전에 발명된 전화기와 영화, 80여 년 전에 발명된 텔레비전 같은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30년 전에 등장한 PC20년 전에 등장한 인터넷 같은 디지털 기술을 등에 업고 있다.

 

책과 미디어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

 

이런 미디어 기술은 일정한 방향으로 놀랄 만큼 발전해 가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수억 명의 인구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개인화된 미디어로 가고 있다. 소니의 워크맨이 개인화된 미디어는 분명하지만 네트워크가 없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방송 송출이라는 일방향 통신은 있었지만 개인화된 미디어는 아니었다. 이 흐름에 결정적인 변화를 준 것은 IBMPC(Personal computer,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었다. PC 안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구현하는 것을 꿈꿔왔다. 마치 세포가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듯 PC는 사람들에게 개인 영역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해 왔다. 동시에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정보를 연결해주는 신비로운 뉴런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개인화된 미디어, 그러나 세상 밖 무한대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는 아날로그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개인화된 미디어이면서 동시에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연결된 광대한 미디어다. 그 미디어가 지금 사진기,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은 물론 책, 만화, 잡지, 신문 등 현존하는 모든 미디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개인이 소유한 단말기는 작은 세포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세포가 우주를 품고 있는 셈이다.

미디어의 개인화는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이 그의 저서 미디어의이해(미디어의 이해인간의 확장 Understanding Media-The Extensions of Man라는 책은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의 본질을 탐구하고 정리한 이론으로 1964년에 발간되었다.)에서 테크놀로지의 힘은 인간의 신체나 감각의 확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가 시각을 잃어버리면 다른 모든 감각이 어느 정도까지 시각 역할을 맡는다. 쓸 수있는 감각을 이용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호흡과 마찬가지로 강력하다. 이것은 테크놀로지가 이미 우리 신체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예측한 이론과 밀접하다.

미디어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다. 공기가 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듯 사상, 철학, 감정,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데 아날로그 방식이든 디지털 방식이든 책, 잡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같은 매체가 나오기 전까지 인류는 정보를 어떻게 주고받았을까?

문자와 책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는 암벽이나 토기에 그림이나 기호로 정보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손짓과 목소리 같은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돌고래처럼 초음파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미의 페로몬 같은 화학적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의사소통 방식은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미디어의 근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문자와 책이라는 미디어를 만날 수밖에 없다.

책은 근본적으로 개인화된 미디어다. 책을 남에게 읽어주는 것은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것과 비슷하고, 함께 보는 행위도 있긴 하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공유하는 도서관도 있지만 읽는 행위는 결국 개인에 국한된 미디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의 작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책으로 시작된 개인화된 미디어는 수천 년 동안 사진기,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같은 미디어로 각각 분화 발전된 다음 21세기에 다시 통합되어 우리 손 안으로 되돌아 온 것은 아닐까?

이 해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과거로 기나긴 시간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미디어는 왜 탄생했고, 어떻게 해서 탄생했을까? 미디어 탄생 이전의 준비 과정은 어떠했을까? 그것은 구어(口語)의 탄생에서부터 그림과 기호를 거쳐 문자와 종이, 책에 이르는 우리 인류 조상이 밟아왔던 기나긴 과정을 살펴보는 일에서부터 그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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