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0만 년 전 아프리카 동부지역, 광대한 삼림이 사라진 자리에는 푸른 초원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위로 습격해 오는 거친 바람, 수 킬로미터까지 퍼지는 맹수들의 울음과 함께 밤이 깊어갔다. 생존을 위해 온 신경을 모아 언제든 도망갈 태세를 하고 있는 나약한 동물들, 먹이사슬의 법칙에 따라 긴박하게 움직이는 크고 작은 생명들, 어떤 존재들에겐 그날 밤 보는 별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몇 백 미터마다 간간이 자리 잡은 나무 위 또는 포식자의 손에 닿지 않는 바위틈에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들이 삼삼오오 숨어 있었다. 그들이 바로 파란트로푸스와 호모 하빌리스라는 유인원들이다. 그들에게 밤은 너무나 길었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포식자에 대한 공포, 굶주림에 대한 공포가 그들로 하여금 어떤 생각이든 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의 기초는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3억 7천만 년 전 포유류의 선조격인 아칸소스테가 당시 5미터 크기의 하이네이라라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손발이 생기게 되고, 수백만 년 후에는 육지로 진출해 동부 아프리카의 광대한 산림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카르폴레테스로 진화한 것처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진화의 계기가 되었다. 풍부한 산림을 기반으로 나무에서 살아가던 그들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왜 직립보행을 하는 유인원이 되었는지, 그리고 200만 년 전에 왜 그렇게 다양한 종의 유인원들이 생기게 되었는지 그 답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다.
800만 년 전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면서 총 길이 2,400킬로미터, 높이 8천 미터에 달하는 거대 산맥이 생성되었다. 이로 인해 인도양에서 북상하는 해양성 기단이 히말라야 산맥에 가로막혀 인도에서는 몬순 기후가 형성되었다. 반면 아프리카에 도달한 기류는 매우 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아프리카의 광대한 산림이 급속하게 사라졌고, 나무 위에서 살던 유인원들은 땅으로 내려와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했다.
200만 년 전 대표적인 유인원 중 파란트로푸스와 호모 하빌리스는 아프리카의 혹독한 환경에서 직립보행을 하는 점에선 같았지만 살아가는 형태는 달랐다. 파란트로푸스의 경우 특정한 나무뿌리를 주식으로 삼는 채식주의자인 반면 호모 하빌리스는육식을 기본으로 하는 잡식주의자였다. 그러한 특징 때문에 훗날 이들의 운명은 갈리게 되었다.
파란트로푸스는 나무뿌리를 먹는 식습관으로 이동거리가 길지 않았지만 호모 하빌리스는 동물의 시체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모 하빌리스는 동물을 사냥하는 강자가 아니었으므로 주로 육식동물이 먹고 남긴 동물의 시체를 찾아다녔다. 뼈만 남은 시체를 찾아낸 뒤에는 돌로 뼈를 부수고 나뭇가지로 그 안에 있는 골수를 파먹었다. 그런데 죽은 동물의 뼈에서 추출한 골수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게 들어 있었다. 호모 하빌리스의 고단백 영양식은 그들의 뇌 용량을 크게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류의 진화 발전에서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요소는 아닌 듯하다. 호모하빌리스의 경우처럼 생존을 위해 도구를 사용했고, 주식으로 삼았던 동물의 시체가 오히려 그들의 뇌 용량을 확장시켰다. 뇌용량이 커지면서 동물의 시체를 찾아내는 방법과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이 더 정교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 그들은 동물의 시체를 찾기 위해 불가피하게 긴 거리를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포식자로부터 피하는 방법에서부터 동물의 시체를 찾아내는 방법, 지형지물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등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나갔을 것이다.
그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고 동물의 시체를 찾아내고 뇌 용량이 커지는 과정에서 동료들과의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기 어렵다. 직립보행으로 중력에 의해 목의 후두가 내려앉아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발음기관을 갖게 된다는 이론에 의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목소리로 의사소통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협업보다는 힘이 센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무리이동이고, 사냥보다는 동물의 시체를 찾아 채집하는 방식으로 볼 때 의사소통은 매우 단순했을 것으로 보인다.
히말라야 산맥 때문에 건조해진 아프리카 지역에 또 다른 악재가 발생했다. 300만 년 전부터 지구의 기울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극지방의 얼음지대가 넓어져 갔다. 지구 전체가 건조해지면서 아프리카의 건기도 점점 더 길어지고 심해졌다. 특정 식물에 기대어 살았던 파란트로푸스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된 반면 호모 하빌리스는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다.
15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보다 진화 발전된 존재가 등장했다. 바로 호모 에르가스테르였다. 그들의 뇌 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두 배나 컸다. 커진 뇌 용량은 그만큼 더 많은 칼로리를 요구한다. 현대인의 경우 섭취한 칼로리의60%를 기초대사활동에 쓰는데 그중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가 가장 많다. 에르가스테르 역시 섭취한 칼로리의 60%를 두뇌 등 기초대사활동에 썼다. 그만큼 뇌 용량이 과거의 유인원에 비해 급격하게 커졌음을 의미한다. 호모 하빌리스에 비해 그들의 이동 거리는 훨씬 더 넓어졌다. 호모 하빌리스가 짐승의 사체를 채집하던 방식과 달리 그들은 직접 사냥까지 하게 되었다. 사냥을 하려면 집단적 협업이 필수다.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소리를 사용했다고 한다.
언어란 발성기관이 만들어 내는 특정한 음성에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이다. 어떤 의미라는 것은 사회적 약속이다.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의 핵심 원리는 힘이지만, 협업을 전제로 한 사회적 관계는 차원이 달라진다. 서로 의지하고 결속하면서 사회적 관계는 끈끈해지기 마련이다.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집단적 협업은 먹이를 확보하는 방식에 질적인 변화를 거쳤을 것이 분명하다. 정교한 도구를 사용하고 협업을 통해 사냥을 하고 그렇게 모은 식량을 집단과 함께 나누어 먹는 문화가 퍼졌을 것이다.
일본 NHK가 제작한 명작 다큐멘터리 〈경이로운 지구〉 중 ‘제5편 인류의 눈에 숨겨진 비밀’편을 보면 다른 영장류와 다르게 인간은 흰자위를 가지고 있다. 흰자위를 가지게 되면 약육강식의 사회에선 불리하지만 인간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고 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쉬운 쪽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아프리카에서 나일강을 따라 중동, 아시아, 유럽 등 전 대륙으로 1백만 년 동안 이동하면서 계속 진화했을 것이다. 50만 년 전에는 동아시아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30만 년 전에는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했다. 마침내 20만 년 전에는 현대 인류와 DNA가 일치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인류 최초로 협업을 했고 음성을 사용한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이동과정과 진화 과정을 보면 1만 년 전 농경문화가 시작된 곳과 5천 년 전 문명 발생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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