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선, 칠레 선, 또 파라과이 선의 우편기, 이렇게 세 대는 남쪽과 서쪽과 북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이들이 실어 오는 우편물을 유럽행 비행기로 다시 옮겨 보내기 위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항공로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리비에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착륙장을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인부 한 사람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무전국의 메시지를 전했다.
-칠레 선 우편기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등불이 보인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오래지 않아 리비에르에게 그 비행기의 폭음이 들려 올 것이다. 밀물과 썰물로 가득 찬 바다가 오랫동안 가지고 놀던 보물을 해변에 돌려주듯, 밤은 지금 비행기 한 대를 그에게로 인도하는 중이었다. 조금 더 있으면, 나머지 비행기 두 대도 내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탑승원들은 기진맥진해서 자러 가고, 새 탑승원들과 교대를 할 것이다. 그러나 리비에르에게만은 휴식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유럽 행 비행기 때문에 새로운 불안을 짊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비에르는 자기가 오래 전부터 매우 무거운 물건을 짊어지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휴식도 없고 희망도 없는 노력이라는 큰 짐을 말이다. 그는 피로에서 오는 서글픈 생각을 모두 물리쳐 버리고, 격납고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칠레 선의 비행기가 폭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들려 오던 엔진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항공 표지의 전등들이 격납고와 무전탑, 사각형의 착륙장의 위치를 밝혀 주었다. 이윽고 비행기는 탐조등의 빛살 속을 구르고 있었다. 리비에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직도 내 비행기가 두 대나 날고 있으므로 나는 하늘 전체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생명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비행장에서 저 비행장으로, 툴루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기까지 잇닿은 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그는 어디선가 지금도 일하고 있을 그 야근 사무원들을 격려해 주기 위해 사무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그러고 난 후, 자신이 일하는 영업부 사무실로 돌아왔다. 하나밖에 켜 있지 않은 전등이 한구석에 밝은 점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는 서류 뭉치 하나를 들고 자기 책상으로 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폰을 눌러, 자정쯤 떠날 유럽 행 우편기의 조종사를 불러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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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사가 건네 준 종이 쪽지가 그를 구해 줄지도 모른다. 파비앙은 이를 악물고 그것을 펼쳤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는 통신이 불가능합니다.
파비앙은 숨을 깊숙이 들이쉬었다. 무전사가 폭풍우 때문에 겁을 집어 먹고 안테나를 걷어 올리기라도 하면 도착해서 그의 얼굴을 짓이겨 놓으리라 생각했다. 이 어둠의 심연 속에 빠진 그들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져 줄 수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어떻게 해서라도 연락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단지 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가물가물한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목소리 하나, 이미 잃어버린 지구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 하나만이라도 그는 듣고 싶었다. 파비앙은 누군가가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 주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나더러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라고 하면…… 차라리 그렇게 하겠다.
달 그림자가 아늑하게 비치는 평화로운 대지가 어디엔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혼자뿐이었다. 그는 물질까지도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비행기가 밑으로 빠져 들어갈 때마다 엔진이 어떻게나 진동이 심한지 비행기 전체가 성이 난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던 것이다. 이제 파비앙은 고도조차 잃어버린 채 자꾸만 어둠 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지상의 모든 산들이 취한 듯이 자신의 주위를 떠도는 것같이 느껴졌다. 파비앙은 최후의 결심을 했다. 그래서 산이라도 피할 생각으로 하나밖에 없는 조명탄을 던졌다. 조명탄은 빙빙 돌며 불꽃을 일으키더니 금세 꺼져 버렸다. 그것은 바다였다.
-다 틀려 먹었구나! 육지는 어디 있단 말인가? 이제 조명탄도 없으니 죽는 수밖에…….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폭풍우 틈새로 별 몇 개가 반짝거렸다. 그는 그것이 함정이리라 생각했다. 별 세 개를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올라가면, 다시는 내려오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별을 물고 늘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빛이 하도 목마르게 그리워서 파비앙은 올라가고야 말았다.
파비앙은 별이 가리키는 목표를 따라 폭풍의 소용돌이를 피해 가며 올라갔다. 그는 그 희미한 자석에 끌려 올라갔다. 빛을 찾아 오랫동안 고생을 한 끝이라 아무리 희미한 빛이라도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이제 그는 광명의 세계로 올라가고 있었다. 위는 트이고, 올라가는 대로 밑은 다시 닫혀지는 우물 속을 그는 빙글빙글 돌며 조금씩 올라갔다. 그러자 구름은 그 암흑의 흙탕물을 가시고 깨끗한 흰 물결이 되어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다가 뒤로 물러가곤 했다.
잠시 후 파비앙은 깜짝 놀랐다. 세상이 어찌나 밝은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달과 뭇 별들이 구름 위에다 파도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비행기는 이상하리 만치 평온해졌다. 비행기는 행복한 섬의 물굽이처럼,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숨은 하늘의 일부분에 접어든 것이었다. 파비앙은 이상한 세계에 들어선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 하면 그의 손, 옷, 기계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비앙이 뒤를 돌아다보니 무선사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우린 이제 살아날 길이 없게 되었는데 웃다니……, 미쳐 버리고 말았어.
어쨌든 그를 붙잡고 있던 암흑의 팔에서 놓여 난 것이다. 포승을 끌러 잠시 동안 꽃밭을 마음대로 거닐 수 있게 내버려 둔 죄수처럼 그를 옭아 매고 있던 줄이 풀어졌다. 그는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별들 사이를, 자신과 그의 동료말고는 살아 있는 물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계를 이리저리 휘돌았다. 보석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갇혀 버리고 만 도둑의 처지와 똑같았다. 다시는 살아 나올 수 없는, 즉 사형 선고를 받은 몸으로 차디찬 보석들 사이를 방황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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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기항지인 코모도로리바다비아의 무전사 한 사람이 갑자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자 그 비행장 안에서 밤을 새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둘레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강한 광선을 받고 있는 백지 한 장을 들여다보았다.
-폭풍우 상공 3천8백 미터에 갇혔음. 바다로 불려갔다가 지금 육지를 향해 정서(正西)로 비행 중임. 아래쪽은 전부 구름에 가렸음. 폭풍우가 내륙까지 뻗쳤는지 통고 바람.
폭풍우 때문에 이 전보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전송하기 위해 무전국 하나하나를 릴레이 식으로 거쳐야만 했다. 통보는 이 탑에서 저 탑으로 차례차례 올려지는 봉화처럼 밤을 뚫고 달렸다.
-내륙 전체에 폭풍우 엄습해 왔음. 휘발유는 얼마나 남았는가?
-반 시간.
이 구절은 또 이 국에서 저 국으로 차례차례 올라가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이르렀다. 비행기 탑승원들은 30분 안에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운명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리비에르는 이미 희망을 버렸다. 저 탑승원들은 밤 가운데 어디론가 빠져 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는 걱정이 많고 상냥한 파비앙의 아내를 떠올렸다. 그리고 조종 장치에다 자신의 운명을 걸고 있을 파비앙의 손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어루만졌을 그 손을, 신의 손처럼 가슴을 설레게 했을 그 손을. 파비앙은 화려한 구름 바다 위를 방황하고 있지만, 그 밑에는 영원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는 남에게 돌려 주어야 할 쓸 데 없는 보물들을 끌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이 별에서 저 별로 돌아다니는 것이다. 파비앙과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오직 잡음 가득한 음파뿐이다. 신음 소리 한 마디 없이.
코모도로리바다비아 무전국에서는 이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서 1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이아블랑카 무전국에서는 20분 후에 다음과 같은 무전을 청취했다.
-내려감. 구름 속으로 들어감…….
그런 다음에는 분명치 않은 어떤 문구 중에서 이 두 어절만이 트렐레우 무전국에 나타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탑승원들이 이미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휘발유가 떨어졌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엔진이 멎기 전에 착륙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전국의 목소리가 트렐레우에 명령했다.
-그걸 물어 보시오.
살아 있다는 표시가 될 그 음이 어쩌면 들려 올지도 모른다. 그 비행기가 별들 사이로 다시 올라오면 그 별이 부르는 노래가 들려 올지도 모른다. 일 초 일 초가 많은 것들을 앗아 간다. 파비앙의 목소리를, 파비앙의 웃음을, 사랑을……. 그 때, 트렐레우에서 온 무전이 주위를 환기시켰다.
-응답이 없습니다.
-1시간 40분. 휘발유의 극한이다. 아직 비행하고 있을 수는 없지.
그러자 리비에르는 무언가 씁쓸한, 폐허가 된 공장에 떠도는 바로 그러한 서글픔이 마음속에서 일었다. 이제는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리비에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수그리고 자기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시계를 꺼내어 보더니, 사무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2시요. 파라과이 우편기가 2시 10분에 착륙할 겁니다. 유럽 행 우편기를 2시 15분에 이륙시키도록 하시오.
그러자 야간 비행이 중지되지 않는다는 이 놀라운 뉴스는 곧 각 사무실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파라과이 우편기에서 곧 착륙한다는 무전이 왔다. 리비에르는 그의 부하가 몹쓸 곤경을 당하고 있는 시간에도 전보를 한 장 한 장 훑어보았다. 그리고 파라과이 우편기의 순조로운 비행을 지켜 보며, 한번 닦아 놓은 길은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파라과이에서 이 비행장 저 비행장을 거쳐 날아온 파라과이 비행기가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파라과이에서 유럽으로 가는 우편 행낭(우편물 자루)들을 유럽 행 비행기에 옮겨 실었다.
-다 실었어? 그럼 스위치.
조금 있으면 이 비행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상공을 지나갈 것이다. 싸움을 다시 시작하는 리비에르는 비행기의 폭음이 듣고 싶었다. 별세계를 행군하는 군대의 우렁찬 발소리같이 폭음이 나서 부르릉거리다가 사라지는 것이 듣고 싶었다. 리비에르는 팔짱을 끼고 사무원들 사이를 지나갔다. 유리창 앞에서 발을 멈춘 채 생각에 잠겨 들었다. 만일 자신이 단 한 번이라도 출발을 중지했다면, 야간 비행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 리비에르를 비난할 그 마음 약한 자들을 앞질러 리비에르는 또 한 패의 탑승원을 밤 속으로 놓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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