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멈추십시오≫
미 CIA가 대한민국 대통령실을 도청한 문건이 폭로된 사건은 이미 주권침해 논란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공개된 CIA 기밀문서명 ‘한국,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무기 획득 관련된 최종 사용자 우려로 곤혹’(South Korea Mired in End User Concerns Related to U.S. Push to Obtain Ammunition for Ukraine)이라는 문서는 이 사안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이 적어도 2가지 이상 일어났음을 확인합니다.
첫째,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요청으로, 보유 중인 155mm 포탄을 최종 사용자가 우크라이나 군임을 알면서도 외부 유출했습니다. 살상 무기는 우리나라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비살상용 지원 물품과는 차원이 다른 군사외교적 의미를 갖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윤석열 정부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대외적 입장을 취해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의해 기존의 입장을 바꾼 것이 폭로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은 수십만 발의 우리나라 155mm 포탄이 우크라이나군의 수중에 이미 들어가 있거나 곧 들어갈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가 대한민국을 준 적국으로 간주할 만한 사안입니다. 러시아가 3월 28일 동해에서 초음속대함미사일 발사 훈련을 수행한 것이 이 사안에 대한 군사적 경고로 보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전시상황에서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공개 정책을 넘어 국내법의 방향과 원칙이기도 합니다.
방위사업법에는 정부가 전쟁·테러 등과 같은 긴급한 국제정세 변화가 있는 경우, 방산물자 수출을 제한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군용전략물자 수출통제 훈령에는 ‘분쟁 국가 중 일방에 대한 수출로 인한 외교적 마찰 가능성’, ‘특정국가로부터 수출자제 요청이 있은 경우’ 등 수출을 통제해야 할 기준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시, 한-러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질 거라고 지속적으로 경고해왔습니다.
한미동맹을 한반도 평화와 안보 차원을 넘어 저 머나먼 우크라이나에까지 확장하여 지리적으로 가까운 러시아를 준 적대국으로 돌려놓는 이 결정이 어떻게 우리나라 안보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문건에 등장하는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은 살상무기의 우크라이나 제공이 기존 입장의 변경임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지정학적 안보 위험을 잔뜩 높여 놓은 이 위험한 결정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와 한마디 논의도 없었습니다.
실로 위험한 정권입니다.
둘째,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최종 사용자가 우크라이나 군임이 드러나서는 안 될 살상 무기 공급이, 더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개되어 버렸습니다.
김성한 전 실장은 “우크라이나에 빨리 포탄을 공급하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라면서, 포탄이 어떤 형식과 경로로 나가든 최종 목적지가 우크라이나라는 것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공개된 CIA 첩보문서의 표현대로 포탄의 ‘최종 사용자’(end user) 문제가 한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는 것은 한국 정부의 포탄 제공이 우크라이나군을 최종 사용자가 될 것으로 인지했다는 것이 드러날 경우 대외적으로, 특히 러시아에 대해 한국의 전략적 안보에 해가 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악의 없는” 도청이라는, 지나가는 소가 웃을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불법 도청과 그 공개로 인해 한국의 대러시아 외교가 궁박한 처지에 몰렸는데도 말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장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대만이 꼽힙니다. 중국의 전쟁 준비 상태에 있다는 기사도 나옵니다.
대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분쟁, 유사시 전쟁을 벌일 경우 우리나라의 최대 안보 이해는 무엇입니까?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토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은 대한민국 영토가 중국의 집중 타깃이 되는 미군의 군사 기지로 전락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1의 가치여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과의 이해할 수 없는 굴욕 협상을 한 윤석열 정부에게서 저는 불길한 기운을 느낍니다. 국민의 생명과 국토의 보전이라는 제1의 가치보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맹목적 추종이 안보 전략의 최우선 가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모든 국가들이 실리와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 전쟁터에서 편향된 선악의 세계관에 기초한 ‘가치 외교’를 표방하면서 한미일 동맹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대일외교의 참혹한 결과, 그리고 이번 CIA 도청 파문으로 드러난 결과 모두가 이 위험한 정부의 위험한 외교 전략과 역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국제평화를 위한 질서에도 반합니다.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재래식 무기의 과잉축적 방지를 위한 세계협정인 바세나르협정(WA)의 회원국입니다. 바세나르 협정에 따르면, 회원국은 타 회원국에 심각한 우려를 미치는 전략물자 이전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며, 수출허가 시에는 반드시 허가 사실을 회원국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한 UN무기거래조약에 따르면, 당사국은 전쟁의 수행에 사용될 것임을 허가 시 인지하고 있다면 그 어떤 무기 이전도 허가해서는 안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제 분쟁의 해결에서 무력 대신 정치외교적 해결을 우선시하면서 불가피하게 분쟁에 참여하더라도 평화적 인도적 개입만을 해왔던 지난 수십 년에 걸친 대한민국의 노력과 신뢰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한미일 동맹에 올인하는 것은 국제사회 수많은 국가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는 윤석열 정부에게 과연 대한민국 안보를 맡겨도 되는지 진지하게 추궁해야 할 상황임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이 사태에 대한 한국의 올바른 입장이 분명히 정리될 때까지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미국 방문을 미루십시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칩스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우리나라 경제에 첨예한 이해가 걸린 통상 현안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추가적인 정치군사적 요구와 함께 다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지금 윤석열 정부의 전략과 역량으로 우리 경제 및 안보의 이해관계가 최대한 반영되기는커녕 미국의 이해와 균형을 이루는 성과도 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태도를 보면 하다못해 도청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둘째, 외교안보 라인을 문자 그대로 전면적으로 교체하십시오.
비참한 대일외교 협상에 이은 도청 파문은 현재의 외교안보 라인이 우리나라의 전략적 안보 이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박진 외교부장관,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을 포함한 고위급 외교안보 라인 전체를 교체함으로써 최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초유의 대통령실 도청사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지 말고,
책임있는 자세로 진상을 파악하고
대통령실 등 국가주요시설의 안보 태세를 강화하십시오.
미국에 당당히 항의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십시오.
이번 사태에 대해 도청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불확실하다고 버티는 정부는
전세계에서 윤석열 정부뿐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는 이미 실패했지만, 지금이라도 적어도 글로벌 ‘호구’신세는 면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한탄이 정녕 들리지 않습니까?
안보마저 정쟁으로 만들어 정부의 실책을 물타기하려는 시도를 멈추십시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외교 또한 대통령 개인의 권한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잠깐 멈추고, 돌아볼 때입니다.
요동치는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한,
평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실리적인 길이
무엇인지 다시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외교 참사를 방지하지 못한 ’이미 실패한 대통령 사람들‘말고, 외교 안보 역량이 풍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해 들어야 할 때입니다. 물론 국민들에게도 충분히 이 과정과 결정이 납득되어야 할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고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지난 수개월의 외교 참사에서
어떠한 것도 반성할 지점을 찾지 못하겠다면,
현 지정학적 위기의 엄중함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면,
오로지 그것이 반정부세력 혹은 ‘적국’의 조작이고
불법적인 개입으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평화를 위협하는 정권은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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